3년차 회고

Dec. 31, 2023

어느덧 하이퍼커넥트에서의 세번째 해가 지나갔다. 올해는 작년과 재작년에 비해서 느끼는 바가 조금 다르다. 작년보다 더 많은 성과를 냈지만, 무서운 게 없던 지난 해들과는 다르게 내 자신에 대한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지는 한 해였고,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돌이켜보면 첫해는 순수의 열정이었던 것 같다. 모르는 게 참 많았지만 정말 의욕적이었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 늘 최선을 다했다. 이때는 주로 엔지니어링 그 자체에 매료되어서 지저분한 코드를 리팩터링하고, 부족한 테스트 커버리지를 높히는 작업에 뿌듯해했다. 시키지 않았던 것들도 하려고 애썼던 것 같고, 기회만 있으면 뭐든 덥썩 물었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이런 작업을 하기에 그치지 않고, 내가 한 일에 대해서 팀과 조직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1년차 치고는 꽤 괜찮은 하드스킬과 열정을 바탕으로 조직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런 사실에 재미있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물론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 땐 순수하게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2년차에는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이 주어졌다. 봄부터 작은 프로젝트 하나를 이끌게 되었고, 다른 신입 엔지니어 한 명도 같이 붙어서 일하게 되었다. 작은 프로젝트지만 2년차 만에 리딩을 한다는 사실에 뿌듯했고,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다만 이때는 비즈니스 성과가 좋지 못했어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지까진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도 그 이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Feature Store)는 괜찮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 프로젝트는 기술적으로 꽤 챌린징한 주제였고, 올해 DEVIEW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2년차에는 어떻게하면 팀을 넘어서 조직 전체에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 고민과 함께 팀 경계를 뛰어넘어 다른 팀의 문제 해결을 도와주기도 했고, 엔지니어링 이외의 것들을 통해 조직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들도 했던 것 같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2년차 이후로는 조직에서 꽤 영향력 있는 엔지니어로 자리메김했다고 생각했다.

3년차의 시작은 2년차 때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더 많은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내가 느끼기에 조직에서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은 이제 크게 열심히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아직 배울게 많긴 하지만 신뢰는 주었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링 역량 증명보다는 회사 비즈니스 지표에 직접 기여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생각과 함께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하고, 새로운 일들도 많이 벌렸다.

하지만 이런 나의 의지와는 달리, 항상 비즈니스 임팩트가 커 보이는 일들만을 할 수는 없었다. 팀 크기에 비해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았고, 데드라인이 촉박한 몇몇 작업들은 팀 차원에서 생각해 봤을 때도 내가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큰 비즈니스 임팩트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꼭 해야하는 일들도 상당수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지속되니 꽤나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물론 프로젝트들을 잘 마무리 짓기는 했지만, 리더십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잘 평가해 줄지에 대한 불안감이 늘 존재했다. 엔지니어링은 잘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즈니스 성과를 못낸거란 결론이 나올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중간중간 이런 상황에 대해 리더십이 충분히 알고 있을 수 있도록 하는데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1 on 1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돌이켜보면 1~2년차 때는 피드백 위주로 1 on 1을 헸던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은 꽤 달라졌다. 정렬(alignment)을 맞추는게 중요하다는 말에 대해 이때 확실히 체감했던 것 같기도 하다.

.

높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감은 더 많은 프로젝트로 나를 이끌었다. 그 덕에 다양한 TF 활동과 본래 RnR 이외의 작업들을 진행했다. 작년에 비해 컨텍스트는 훨씬 더 많아졌고, 업무강도 또한 높아졌다. 중간중간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일이 많아졌을 때에는 리더십과 다른 동료들에게 종종 도움도 요청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았던건 올해가 처음이었는데, 이런 상황에 도움을 요청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는 점에선 조직에 조금 더 의지하고 압박감을 약간 놓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일들을 하고 많은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내 영향력은 더 커져갔는데, 커진 영향력에 대한 책임도 함께 늘어갔다. 리더십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여러 번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의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꼭 좋은 영향력만 끼치는 게 아니라 때에 따라 나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그렇게 신중한 성격은 아니며, 또 몇 번의 작은 실수를 한 적도 있기에, 이런 부분은 나에게 또 다른 짐으로 다가왔다. 물론 신중하지 않은 성격의 이면에는 속도와 추진력이라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해야 한다고 믿으면 빠르게 해내왔고, 그게 나의 영향력을 키우기도 했기에, 내 성격을 미워할 수도 없었다. 이런 부분은 내게 고민거리로 남았다. 지금까지는 나의 장점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일을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단점을 보완하는 것의 중요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느꼈다. 앞으로 영향력이 커질수록 책임감도 더 커져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1년간의 결과를 놓고 보면 1~2년차 때의 성과보다 올해 성과가 훨씬 좋았다. 본래 RnR인 엔지니어링 업무는 아쉬운 점 없이 해냈으며, 회사 전체의 비즈니스 지표 상승에 기여한 프로젝트들도 많았다. 메인 업무 말고도 다양한 TF 활동과 본래의 RnR을 벗어난 일들도 많이 했고, 대부분 활동이 좋은 결과가 나와서 노력과 운이 같이 따라준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난 해들에 비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1~2년차 때와 비교해서 생각은 더 많아졌다. 기대치와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책임도 같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니어였다면 그냥 넘어갔을듯한 단점과 실수들은 이제 나의 평판에 더 크게 작용한다. 마냥 몰입하면서 행복하게 코드를 짜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으며, 내가 어떤 일을 해야 조직에 더 이득일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가끔은 고민없이 코딩만 하던 1~2년차 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든다. 성과와 행복은 마냥 비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

내년이면 4년차가 되며, 이제 주니어라고 불릴만한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차대비 기대치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느끼는데, 여기엔 다양한 요소가 섞여서 그런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코딩하던 경험, 학부/석사 시절에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해본 경험 (외주, SW마에스트로, 여러번의 인턴 등), 마지막으로 하이퍼커넥트 특유의 저연차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문화가 대표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빠르게 기대치가 커진 만큼, 내년의 나에 대한 기대치는 올해와는 또 다를 것이다. 올해의 개인적인 목표는 회사 비즈니스 지표에 더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이었는데, 내년에는 더 다양한 방면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느낀다.

더불어 지금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것(코딩)과 잘해야 하는 것이 우연히 일치해서 몰입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 이 둘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해야하는 일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계속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체력을 기르는 것과 취미를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또 사람을 믿고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아직 나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고, 아직 타인의 조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다. 어린 시절에 개발자는 코딩만 하는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코딩은 점점 사소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