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의심하는 습관

8월 19일, 2020

나는 항상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고 내가 아는 것들이 모두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흔히들 말하는 ‘꼰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몇 개나 될 것인가. 진실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철학이나 문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실 과학이라는 학문도 진실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과학은 수학과 달리 “과학적 방법”이라는 기법으로 무언가를 증명한다. 과학적 방법이 수학적 방법과 다른 것은 “가설”이 먼저 나오고 가설에 의한 예측이 들어맞는지를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검증한다는 데 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진실”을 찾아내는 방법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오랜 기간동안 진실처럼 믿어져 왔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반박되었다. 과학 또한 그저 편리함을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진실로써 간주하는 정의 행위일 뿐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믿는 과학 또한 그러한데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 어떻게 진실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아무리 이론으로 배우고 경험으로 복습했다 한들 내가 아는 것들이 내일에도 사실일지는 모르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들어맞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고, 그렇기에 무언가가 맞다고 주장할 때에는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법칙이 지켜지지 않은 예로 학부 시절에 반강제적으로 많이 들었던 리더십 교육을 들고 싶다. 이런 교육을 들었던 (또 듣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은 리더십을 가진 CEO가 되기 위해서는 위협을 무릅쓰지 않는 도전정신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 것이다. 그러나 의문은, 이런 ‘창업가형’ 마인드가 영원히 CEO의 자질로 남아있을까라는 것이다. 한때 관리자형 CEO가 잘 나갔던 만큼 창업가형 CEO 조차 ‘한때’ 잘 나갔던 부류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강의들은 그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을 갖자고 세뇌하기만 하지, 왜 그래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는 하지 않는다. 지금 대세가 ‘창업가형’ CEO인 이유는 그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현재 환경에서 활약하기 좋기 때문이다. 뭐 예를 들자면 돈을 빌린(투자받은) 기업이 망해도 대표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고, 10번 실패해도 한 번의 성공만 거두면 실패를 모두 만회하고, 미래에는 현재보다 발전해있기에 미래 지향적인 사업 구조를 짜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풀리지 않고, 성공 1번보다 실패 1번이 더 뼈아프고, 성장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때도 여전히 창업가형 CEO가 정말 정답이게 될까?

당장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도 그것들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선 안된다.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교육, 돌고 있는 자료들은 안타깝지만 10년, 20년 후에는 진실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시행착오를 보고 배우며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증명들을 반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자들처럼 이런 의심하는 습관을 평소에 갖고 있어야 하고, 또 의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성장할 수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사람보다 내가 지혜가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답고 선한 것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러나 그 사람은 모르면서도 무엇인가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고, 그와 반대로 나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바로 그 조그만 점에서 그 사람보다는 내가 지혜롭다 할 것이다. - 소크라테스